네임 닉 [570939] · MS 2015 · 쪽지

2016-04-22 22:16:40
조회수 413

마음의 병을 앓는 나오코

게시글 주소: https://banana.orbi.kr/0008316397


나는 지난 사 개월 동안 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네게 공정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어. 나는 네게 좀 더 제대로 된인간으로서 공정하게 행동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그다지 정상적인 게 아닐지도 몰라. 왜냐하면 내나이 또래의 여자애들은 대개 공정이란 말은 쓰지 않기 때문이야. 보통 젊은 여자애라면 사물이 공정한지 어떤지 하는 건 근본적으로 별 상관하지 않으니까. 지극히 평범한 여자애라면 무엇이 공정한지 아닌지보다는 무엇이 아름다운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 하는 그런것을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기 마련이야. 공정이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가 사용하는 말인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 공정이란 말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것처럼 느껴져. 아마도 무엇이 아름답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건 내겐 너무나 번거롭고 까다로운 명제라서, 그만 다른 기준에 매달려버리게 되는 것 같아. 예를 들자면 공정이라든가 정직이라든가 보편적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야.


하지만 아무튼 나는 나 자신이 네게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를 무척이나 이리저리 끌고다니고 상처받게 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그로인해 나역시 나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며 상처를 입혔어. 변명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변호를 하자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그런것같아.

만일 내가 네 마음속에 어떤 상처를 남겼다면 그것은 너만의 상처가 아닌 나의 상처이기도 해. 그러니까 그 일로 나를 미워하거나 하진 말아줘.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야. 난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한 인간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게서 미움을 받고 싶지않은거야. 네게 미움을 받거나 한다면 나는 정말 산산조각 나버릴거야. 나는 너처럼 자신의 껍질 속에 들어가 무엇인가를 해나가는것이 불가능해. 나는 사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알지 못하지만 나에겐 어쩐지 그렇게 보일 때가 있어. 그래서 때론 네가 몹시 부럽기도 했고 너를 필요 이상으로 끌고 다니게 된 것도 어저면 그 탓인지도 몰라.


 사물을 보는 이런 견해는 어쩌면 지나치게 분석적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곳의 치료방법은 결코 지나치게 분석적이라고 할 수 없어. 하지만 나 같은 입장에 처해 몇달이고 치료를 받다 보면 어차피  많든 적든 분석적이 되어버리게 돼. 뭔가가 이렇게 된것은 이런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러이러한 걸 의미하며,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다, 하고 말이야. 이런 분석이 세계를 단순화하려는 건지, 세분화하려는 건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어쨌든 그때에 비하면 나는 상당히 회복되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주고 있어. 이런식으로 차분하게 편지를 쓸수 있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야. 칠월에 네게 보냈던 편지는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으로 썼지만 이번에는 제법 차분한 심정으로 쓰고있어. 맑은 공기, 밖으로부터 차단된 조용한 세계, 규칙적인 생활, 매일 하는 운동, 역시 그런것들이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수있다는것은 참 좋은일이야.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이렇게 글을 쓸수 있다는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물론 글로 썬호고 보면 나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의 아주 일부분밖엔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누군가에게 뭔가 적어 보내고 싶다는 기분이 든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로선 행복해. 그래서 나는 지금 네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있는거야. 지금은 저녁 일곱 시 반이야 저녁식사도 했고, 샤워도 방금 끝냈어. 주위는 조용하고 창밖은 캄캄해.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아. 평소에는 별이 참 아름다운데 오늘은 흐려서 보이지 않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별에 대해 잘 알아서 저것이 처녀자리고 저것이 사수자리라고 내게 가르쳐주곤 해. 아마 날이 저물면 아무 할 일이 없으니까 어쩔 수없이 별에대해 잘 알게 된것이겠지. 그리고 그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새랑 꽃이랑 벌레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런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자신이 여러가지 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되고 그런식으로 느끼게 되는게 무척 기분이좋아.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toto27 · 466270 · 16/04/22 23:07 · MS 2013

    상실의시대 뭔가 끝까지 읽고나면 사람 현자타임 오게함. (소설자체가 선정성이 다소 있긴하나 그 의미의 현자타임은 아님)

  • 네임 닉 · 570939 · 16/04/23 01:15 · MS 2015

    주인공들 너무 좋아요ㅋㅋ특히 나오코 말하는게 너무 마음에들어서 저 편지쓴부분만 진짜 여러번 읽어서....아직 끝까지 안읽었어요..ㅎㅎ별로 선정적이라고 안느껴졌는데...
    저 말재주가 없어서 여기까지만...
    암튼 댓글 기뻐요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