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알 속도가 국어 성적에 미치는 영향
안녕하세요 독서 칼럼 쓰는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출제자가 수능 국어, 특히 독서 영역에서 측정하려고 하는 역량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평가원이 수능 국어를 통해서 학생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길 바라는 걸까요?
어떤 학생들은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문제의 풀이를 눈알 굴리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편, 추론과 응용이 필요한 문제의 경우 '두뇌 굴리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제 경험상 수능 국어의 선지들은 대략 3가지 정도로 그룹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최소한의 논지파악만으로 즉각적인 정오 판단이 가능한 선지들
ex) 콩으로 메주를 쑨다.
2) 지문으로 돌아가(눈알을 굴려서) 근거를 찾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한 선지들
ex) 철수가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뛰어갔지만 마침 일요일이어서 머쓱해하며 웃었다.
--> 이런 문장은 정보량이 많고 자연스럽게 함정을 팔 수 있어서, 그 자체로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인지 학원인지, 뛰어갔는지 택시를 탔는지, 일요일인지 광복절인지, 웃었는지 울었는지 등등 모든 게 함정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모두 기억하려 하기보다 다시 체크하는 것이 낫습니다.
3) 지문의 명시적인 텍스트만으로는 추론되기 어렵지만 맥락과 논리를 통해 판단이 가능한 선지들
ex) "이론에서는 외면성에 대응하는 예술이 현실에서는 내면성을 바탕으로 하는 절대정신일 수 있다"
3-1) 아무리 고민해도 확실한 판단이 나오지 않는 선지들
과연 실제 수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선택지는 무엇일까요?
위 분류 자체가 불명확하긴 하지만, 아마도 1 : 2 : 1 정도의 비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2 : 3 : 1일수도, 1: 1: 3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생들은 공부할 때 3번 유형의 고난도 선택지들을 부여잡고 과도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역설적으로, 눈알 굴리기를 잘 단련해서 대다수 선지를 오류 없이 처리해내는 학생이 효율적으로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번 유형의 선택지를 많이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3번 선택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됩니다. 그리고, 2번 유형을 능숙하게 처리하다보면, 점점 많은 선택지들이 1번 유형처럼 느껴집니다. 즉, 같은 선택지라고 해도 미숙한 학생에게는 2번 유형이라서 지문의 근거를 꼭 찾아야 안심하는데, 능숙한 학생에게는 1번 유형으로 시간 소모 없이 처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어 시험에서 정오 판단은 반드시 지문 전체의 핵심 주제와 연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저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핵심 주제와 무관한 영역에서 나오는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때로 출제자들은 훌륭한 독해력 시험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오류 논란 없이 변별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눈알 굴리기라는 표현은 모두가 동일한 속도를 가지고 있을거라는 착각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합니다. 내 눈알을 어디에 포커스하고, 근거지문이 대략 어디에 위치했을지를 빠르게 추정하고, 틀렸다면 교정하는 것 그 자체가 독해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합니다. 그걸 외부에서 관찰하면 '저 학생은 어떻게 눈알을 빨리 굴리지?'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죠. 사실 위 능력은 충분히 훈련가능합니다.
3번 유형의 위험성이라면, 3번과 3-1번을 구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3번을 아주 열심히 뚫으면 결국 3-1번 유형은 사라지고, 즉 모든 선지에 대해 명쾌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궁의 문 문제나 광다이오드 문제, 가능세계 지문, 탄궁가, 겸양 논란과 같이 국어를 직업으로 가르치는 강사, 교수들 사이에서도 오류 논란이 적지 않은 걸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누가 맞고 틀린다기보다는, 인간의 사고과정을 5지선다로 한정하려는 이 시험의 구조적 문제이자 한계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시험장에서 3-1번을 만나면 도망가셔야 합니다. 3-1번 유형은, 시간을 많이 투여해도 정확도가 그에 비례해서 높아지지 않는데, 외관상 3번 유형과 비슷해서 학생들을 괴롭힙니다. 결국 3번과 3-1번 문제는 시험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정도 틀릴 걸 각오하면서,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따른 차선의 판단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행동강령이라고 표현하던데, "최선"이라는 유혹에서 절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결단력이야말로 최고의 행동강령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3-1번 유형의 정답률은 노력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각자의 취향이나 개성 하에서 고민될 만한 선택지가 분명히 있고, 평가원이 설정한 정답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객관적으로도 틀린 판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원이 항상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느정도 허용범위를 두고 출제의도를 최대한 의식하면서 선택하면 정답률을 올릴 수 있겠지만,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문제들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설 모의고사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모의고사가 꼭 기출을 외관상 닮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1번은 오류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등급컷을 낮추지만, 사설 출제진들이 생각하는 포인트가 정말 출제자의 생각과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차라리 2번 유형, 눈알 굴리기를 혹독하게 연습할 수 있게 돕고 그로써 3번 선지에 도전할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학습자료의 효율이자 미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수능 국어는 암기력, 눈알 굴리기, 두뇌 굴리기 역량뿐만 아니라, (원래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시험에 대한 메타인지 능력을 반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동적으로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보다, 능동적으로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이 텍스트를 읽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전히 수능 국어 시장에는 효율적으로 공부할 만한 제대로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튼 주체적인 사고와 연습이 중요하다는 상투적인 말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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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1~2도 3처럼 풀기 위해 연습해야해" 하고 학습하기보다 3 같은 문제들을 푸는 방식 위주로 학습하되, 실전에선 1,2번도 적절하게 활용해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1,2를 신속하게 판단하는건 순수 피지컬(독해 속도나 정보 처리력)이라 생각해서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길러질 것 같더라고요.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3번에 대한 집착이 어려운걸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1,2에 집중하니 확실히 점수 하방은 많이 올랐습니다!
저도 남은기간 1,2의 기계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3번은 시간 남으면 건들고 3-1은 그냥 찍는 식으로...
3-1은 무조건 존재해요
231111에 4번선지 손해 배상 예정액이 180인데 왜 감액을 할 수 없는지 정상적인 시간 안에 지문으로부터 추론이 불가능...그냥 확실한 2고르고 넘겨야 함...
2306에 번호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중차분법지문에서 스노는 수원이 비뀐,바뀌지 않은 두 지역의 공기의 차는 없다고 봤을 것이다<-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겨야 함...
2211도 브레턴우즈 뭐시기 주저리주저리 하고 지문 내용에서 '평가 절상'과 '평가 절하'가 나오는데 '평가 절하'가 달러화의 가치를 낮춘단 말인지 타국 통화의 가치를 낮춘다는 뜻인지 중의적임 (그래도 바로 뒤에 마르크화 엔화 투기 수요가 떡상했다는 말로 마르크,엔이 떡상하니까 1온스=25달러더라도 마르크,엔 가치가 더 높아졌다고 추론은 가능...)
국어 칼럼 goat라 생각해요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결국은 메타인지와 주체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습니다, 10을 위해서 90을 놓치는 우를 범하면 안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