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공사 [960875] · MS 2020 · 쪽지

2021-01-27 23:25:26
조회수 9,500

심심해서 남겨보는 시골 소년 대치동 상경기

게시글 주소: https://banana.orbi.kr/00035690968

2002~3년 이야기임. 벌써 거의 20년 전이네..요즘 얘기인줄 알고 들어온 친구들한테는 미안.

그때도 오르비가 있었음. 지금이랑은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십수년 안들어오다가 들어와서 글들 눈팅하다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왜그런지 오늘은 이런 얘기를 남겨보고 싶어서 남겨봄.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않음. 

정말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케이스이니 그러려니하고 읽어주면 좋겠음.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공부를 좀 한다는 우물안 개구리였고 고등학교는 지방 특목고를 다니고 있었음. 웃긴건 난 그때까지 살면서 한번도 시골에서 살아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시골은 시골이 맞음. 당시에 나는 정색하고 거부했지만.

 고등학교 1,2학년을 학교 커리큘럼에 맞춰서 다녔음. 학교수업에 충실했음. 선행학습이라 해봐야 수학정도였기 때문에 모든 학교 수업이 중요했고, 모르는걸 새롭게 배우는 시간들이었음. 경시대회준비하는 과목을 제외하고는 학교수업만 따라갔음. 기숙사에서 지내다보니 간섭없이 공부할 수 있는게 진짜 행복했음. 근데 평생 고등학교만 다닐건 아니고 대학을 가야 되는데... 대학은 대전이나 포항에 있는 특성화대학을 막연히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고1때 학교 캠프 가보고 무조건 서울로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음. 구체적인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패쓰. 일반대학을 갈거면 수능을 봐야했는데, 그때만 해도 정시 70%, 수시 30% 시절이라 수능을 준비해야 했음. 


 문제는 학교커리큘럼이 수능에 대한 대비를 하기에는 너무 빈약했었음. 수학이랑 과탐은 그렇다 쳐도, 언어랑 사회탐구는 정말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감을 잡기 어려웠음. 모의고사 점수도 따라서 롤러코스터처럼 왔다갔다 했었고, 당시에 내 마인드로 접근하기에는 수능은 너무나도 큰 벽이었음. 무작정 문제만 풀어서 점수가 나아지지 않았고, 수능에 대한 어떤 방향을 제시를 해줄 멘토가 필요했는데, 그런게 있을리 없었음. 나는 당시 학교 수업에 대한 의존도가 꽤 컸는데 사회탐구시간에는 거의 자습하라고 나가시는 수준이었고, 언어도 수능에서 점수를 얻기에는 어려운 내신 위주의 수업이었음.  뭐 기숙학교다보니 학원다니는건 옵션에 없었고, 간혹 주말에 근처 (사실 2시간 거리) 대도시로 수업 들으러 가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거기라고 해서 뭐 특별한건 없었음. 

하지만 정말 운이 좋았던건 이 시기에 인터넷 강의가 보급되기 시작했음. (디지털대성,메가스터디 등등)


 인터넷 강의를 고2 가을 즈음부터 듣기 시작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언어영역이랑 사회탐구 강의를 위주로 들었음. 이때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오픈 마인드였던게 우리한테 수능에 특화된 강의를 해줄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학교에 아예 인터넷강의들을 수 있는 방을 만들어줌. 방의 생김새는 초창기 PC방 모습 그 자체였음. 


                                         <ref. http://m.enuri.com/knowcom/detail.jsp?kbno=1195260>


 이때 저 뚱뚱한 모니터로 들었던 손사탐 강의는 정말 내가 이과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으로 빠져 들어갈만큼 신세계였음. 이런 강의가 있구나. 강의에서 손사탐이 이게 이래서 내가 탁월하다고 열변을 토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이면서 박수가 절로 나오는 수준. 그때 처음 대치동이란 세계를 알게됨.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꼭 여기에서 직강을 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됨. 인터넷 강의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주변 수 km에 아무것도 없던 깡 시골에 부엉이 우는 소리 들리는 적막한 저녁에 조그만 모니터 안에 보이는 그 세계는 너무도 생경했고, 한번도 직접 본적이 없는 선생님들이지만 집중하라는 말 한마디 없이 학생들을 압도하는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음. 심지어 저렇게 학생들한테 쌍욕을 하는데..(요즘에는 모르겠지만 그시절에는...) 모니터에는 맨앞줄 학생 뒤통수만 보이니 한 30~40명정도 앉아있겠지라고 생각함. 많아봐야 100명?


고2 겨울방학이 2달 약간 못되는 기간이었고, 보충수업들이 진행되곤 했었는데. 그시기가 찾아오기 전 담임선생님께 찾아가 말씀 드림. 


"선생님 저 서울에서 학원한번 다녀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 좀 당황하시긴 하셨는데, 그래도 허락해주심. 주말에만 가서 듣고 오는건 어떠냐 이런말도 있었던것 같은데 ㄴㄴ 온전히 대치동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음. 사실 아니꼽게 보는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서울로 갈 수 있게 됨.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건방졌구나 싶음. 당시 우리 담임선생님께는 지금도 감사드리는 마음이 큼. 


그리고 고2 겨울방학 대치동에서 보낸 딱 2달이 내인생에 많은 영향을 줌. 

감히 말하면 내인생을 바꿨다고도 할 수 있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생각함.


너무 길어지니 여기서 끊고 다음에 이어서..

노잼인데 엄청 기네. 뭐 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보려고 쓰는것도 있으니.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